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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 MarieClaire : 마리끌레르화보 모음/2019 2019. 10. 29. 14:41
향기로운
소란스럽지 않게 남기고 싶은 기억들로 채워가는 김향기의 스무 살.
드라마 <열여덟의 순간> 촬영이 끝나고 뭘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오늘 같은 휴일에는 주로 집에 있거나 혼자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해요. 그리고 요즘 자전거에 빠졌어요.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하천가에 다녀오기도 하고 그래요. 극장에 갈 때도 자전거를 타고 다녀오고요.
그러고 보니 드라마에서 자전거 타는 장면이 많이 나왔어요. 맞아요. 그래서 생긴 취미예요. 드라마에서 친구들과 ‘따릉이’를 탄 적이 있는데, 그때가 아주 오랜만에 자전거를 탄 거였어요. 근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나들이용 자전거 하나를 사서 요즘 자주 혼자 타고 돌아다녀요.
또래 배우가 유독 많은 현장이었겠어요. 다른 작품과 현장 느낌이 많이 달랐어요. 처음에는 그동안의 현장 분위기와 달라서 내가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또래가 많은 데서 오는 뭔가 밝고 활기찬 느낌이 긍정적인 영향을 줬어요. 딱 2학년 3반 학교 친구들 같은 느낌이었어요.
실제로 많이 친해졌나요? 한 명도 빠짐없이 다들 친해졌어요. 옆 반 상훈이(김도완)까지도요.(웃음) 지금까지도 잘 지내고 있어요.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도 <열여덟의 순간>을 떠올리면 제 학창 시절처럼 느껴질 것 같아요. 드라마 촬영 현장이 아니라 진짜 학창 시절 반 친구들과 함께 소통하고 추억을 나눈 것 같은.
열여덟 살 때로 돌아가면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못해 본 것 없이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어요. 영화 <신과 함께> 촬영하고 홍보할 때도 학교생활에 영향이 없게 스케줄을 맞춰주셨어요.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고요. ‘쏠리언’이라는 또래 상담부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또래 상담부 수업 듣고 상담도 하며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했죠.
<열여덟의 순간>의 키워드는 성장과 위로인 것 같아요. 꼭 우리뿐 아니라 어른들의 성장담이기도 해요. 서로 위로하며 성장시켰죠.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저마다 각자의 성장을 이룬 것 같아요. 제가 연기한 수빈이도 굉장히 어른스럽고 똑 부러지며 자신만의 생각이 확고한 아이로 보이잖아요. 그런데 정작 그 속을 들여다보면 또래 아이의 여린 마음이 고스란히 있죠. 그런 게 수빈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후반부에 갈수록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순수한 아이의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준우(옹성우)와의 로맨스 역시 열여덟 살답게 그려내야겠다는 고민이 있었겠죠? 첫사랑은 다른 느낌이잖아요. 그 감정이 드는 순간에는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고, 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좋아하는 게 맞나 싶어 혼란스럽기도 하고. 귀엽고 풋풋한 느낌이 들죠. 그런데 마냥 그렇게 보이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감정을 재단하듯 계산하고 예쁜 그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상황마다 당황스러운 모습조차 자연스럽게 연기하려고 했어요.
엄마와 수빈이의 관계가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동안 많은 엄마들과 호흡을 맞췄는데, 김선영 배우가 연기한 엄마와의 관계는 어떻게 달랐어요? 우선 향기로서는 너무너무 좋았어요.(웃음) 수빈이와 수빈이 엄마는 서로 이해하면서도 각자의 욕심을 내려놓지 못해 괴로워하죠. 수빈이는 엄마를 보며마음 아파하기도 하고요. 애증의 관계가 확실했어요. 지금까지 제가 연기한 모녀 관계 중 가장 현실적이기도 했어요. 열여덟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건 공부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엄마랑 트러블이 더 잦기도 했고요.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말로 다 표현하기에는 힘들어하는 관계였죠. 엄마가 화를 내면 대개는 수빈이가 많이 참아요. 참으면서도 듣기 싫어하고 화나고 답답한데, 무슨 말도 못 하고 마음 아파하고 그러죠. 수빈이를 보면서 감정을 가장 표현하기 힘든 존재가 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여러 작품에서 엄마로 호흡을 같이한 선배 배우들에게 많은 부분을 배울 것 같아요. 맞아요. 작품으로 만난 엄마들 모두 정말 엄마 같았어요. 배우로서 너무 좋고 감사하고 존경하는데, 그 모든 걸 떠나서 진짜 엄마처럼 느껴졌어요. 선배님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죠. 지금껏 늘 제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셨어요.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촬영장에서 임하는 태도나 소통하는 방식, 유연한 대처 능력이 보이거든요. 그런 능력을 볼 때마다 감탄하게 돼요. 그리고 자연스레 제게 그런 것들이 남고 다른 현장에서 선배들을 겪으며 봐온 것들이 문득 떠올라요. 그러면서 저 역시 성장해가는 것 같아요.
좋은 선배 배우들을 만나다 보면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점점 확고해질 것 같아요. 지금까지 아주 좋은 선배님들과 작업을 많이 했잖아요. 그 선배들처럼 다양한 사람들과 잘 소통하면서도 현장에서 항상 자신만의 연기를 만들어가면 좋겠어요. 서로 의견도 잘 나누고 그런 과정에서 내 캐릭터를 잘 구축해가는 배우.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요. 배우는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직업이에요. 자신만의 중심을 잘 잡으며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올해 스무 살이에요. 작품이나 연기할 인물을 선택할 때 이전보다 좀 더 확고한 기준이 생겼나요? 아직 확고한 기준은 없어요. 시나리오를 읽은 뒤에도 이게 과연 내게 맞는 건지 확답은 잘 못 하겠어요. 시나리오를 받으면 캐릭터를 보기보다는 이야기 구조를 보게 돼요. 그런데 배우라면 캐릭터도 봐야 하잖아요. 전 그런 점이 여전히 부족한 것 같아요. 내가 이 시점에 이 캐릭터를 하는 게 괜찮은 건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건 아닌지, 그런 고민이 있는데 아직 저 스스로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올해 초에는 영화 <증인>이 개봉했고, 얼마 전에는 <열여덟의 순간>을 끝냈어요. 이 두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고민한 부분은 뭔가요? 우선 <열여덟의 순간>은 너무 오랜만에 하는 드라마이다 보니 드라마 현장의 속도의 호흡에 잘 맞출 수 있을지 걱정했어요. 고민이라면 지금껏 해온 작품이 주로 가족과 감정을 주고받는 내용이었는데, 이번에는 친구들 사이에 오가는 호흡이 주가 되다 보니 이걸 내가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거였어요. <증인>은 여러모로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웃음) 지우라는 캐릭터가 온통 도전이었고 그로 인해 밀려오는 부담감과 잘해야 한다는 생각, 미세한 손동작, 스타일, 표정 모든 것이 고민이자 걱정이었어요.
두 작품에서 모두 학생이었어요. 자연스레 어떤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해봤을 것 같아요. 저는 자연스러운 어른이 되고 싶어요. 아, 이제 몇 살이 됐구나, 이런 걸 느끼면서 어른이 되기보다는 제가 나이 드는 것을 느끼지 않아도 자연스레 현장에 가면 후배들이 점점 많이 생기겠죠. 그리고 사람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질 테고요. 그런 변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제가 아역 배우로 시작했기 때문에 현장에 가면 이전과 달리 저를 어른처럼 대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럴 때면 너무 부담스럽고 안절부절못하게 돼요.(웃음)
반면 앞으로도 잃고 싶지 않은 점이 있다면요? 많이 웃는 거요. 항상 지금처럼 많이, 잘 웃었으면 좋겠어요.
스무 살이 지난 사람들에게 스무 살은 참 부러운 나이예요. 스무 살이 되기 전에는 동경하는 나이이기도 하고요. 뭔가 꼭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를 만들기도 하죠. 더 어릴 때는 스무 살인 사람들을 보면 엄청 어른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막상 제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 크게 달라질 게 없더라고요. 버킷 리스트라기보다는 전 운전을 꼭 하고 싶었어요. 이제는 극 중에서 운전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테고요.
오늘 문득 떠오르는 올해의 한 장면이 있다면요? 얼마 전의 장면이요. <열여덟의 순간> 배우들과 제주도에 가서 바다를 보고 왔거든요. 그 바다가 너무 아름다워서 휴대폰 잠금 화면도 그 사진으로 바꿔놨어요. 그날 본 예쁜 바다와 하늘이 지금 떠올라요.
나의 스무 살은 어떻게 기억될까요? 아, 정말 얼마 남지 않았네요. 제 스무 살은 특별하진 않지만 재미있는 한 해였어요. 지난해와 크게 다를 것 없이 지냈지만, 작품 하고 학교도 다니면서 이것저것 재미있는 그리고 이전엔 해보지 않았던 것을 하면서 즐거웠던 스무 살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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