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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요한·김성규·김향기의 히어로 : VOGUE 보그화보 모음/2022 2022. 7. 26. 12:50
성장의 완벽한 예, 김향기
“<명량>을 본 게 초등학교 때였어요. 엄마랑 같이 극장에 갔는데, 관객이 꽉 차 있었어요. 그 열기가 아직도 기억나요.” 돌이켜 김향기에게 <명량>은 당시 어렸지만, 이미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현장 경험을 쌓아온 김향기에게조차도 카메라 뒤편의 촬영 과정을 궁금하게 만드는 톱 프로젝트였다.
“전 이미 그때도 촬영 현장을 여러 차례 경험한 배우였으니까요. 저 액션 신에서는 어떻게 카메라가 회전하겠구나, 저 현장 안으로 들어가면 어떤 체험을 할까, 그런 게 몸으로 막 궁금해지는 거예요. 한번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역할을 꼭 해야겠다는 것과는 다른 욕심이었죠.” 어린 김향기가 많은 현장을 통과하며 성인이 되는 동안, 8년의 시간이 지났다. <명량>은 그 사이 속편 제작에 착수했고, 김향기에게도 어렴풋이 바라던 그 기회가 주어졌다. “좀 의외였어요. 관객도 의외라고 생각하실 텐데, 저 역시 전혀 예상치 못한 캐스팅이에요(웃음). 그렇지만 이순신 장군의 젊은 시절 모습으로 가면서 모든 캐릭터의 연령대가 낮아졌으니까, 저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죠.”
김향기는 전설적인 학익진 전투가 하이라이트가 될 액션 장면이 영화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전투를 뒷받침할 ‘드라마’가 전개되는 물길을 터주는 역이다. 특히 극 전체가 남자 배우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유일한 여성 캐릭터의 지분을 차지하는 역할이다. 전편 <명량>에서 정씨 부인을 연기한 배우 이정현이 만들어낸, 전장에 남편을 보내는 애끓는 고통의 감정, 그 전사를 만드는 과제를 수행해야 했다. “<명량>의 정씨 부인이 왜 목소리를 잃었을까, 처음엔 저도 그걸 많이 고민했어요. 정보름이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정씨 부인이 되는 거니까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현재의 정보름에게는 그건 미래의 일이고, <명량>보다 앞선 시기를 그린, 인물들의 젊은 시절인 <한산: 용의 출현>의 시점에서 보자면 알 수 없는 미래잖아요. 그 지점에서 제가 연기해야 할 인물의 톤을 정리했어요.”
김향기는 데뷔작 <마음이>를 시작으로 <신과 함께> 시리즈 같은 블록버스터가 만들어지는 가운데 그 눈길을 대작에만 쏟지 않았다. <증인> 같은 소수자를 다룬 의미 있는 중급 영화가 만들어지는 한편, <눈길>이나 <영주> 같은 신진 감독들이 연출하는 좋은 독립영화가 한꺼번에 제작되는 한국 영화의 물적·질적 다변화와 함께 자신의 커리어를 개발하고 성장시킨 가장 좋은 예의 배우다. 반대로 김향기가 어린 시절부터 쌓은 연기 노하우와 “어리지만 되레 한 수 배웠다”고 선배들이 말하는 타고난 재능으로 이들 작품의 결과 향상에 힘을 보탠 예이기도 하다. 꾸준하고 다채롭고, 배우의 의지가 보이는 집요한 필모그래피다. 그런 의미에서 누적 관객 5,000만이라는 기록할 만한 스코어를 보유한 이 배우의 다채로운 행보에 나는 언제든 사력을 다해 박수 쳐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나 역시 앞서 김향기가 ‘의외의 캐스팅’이라고 한 말에 의견을 보태본다. 무엇보다 이미지의 변화. 짙은 메이크업과 기녀 복장으로 왜군 와키자카에게 접근해 적의 기밀을 캐내는 ‘첩자 정보름’이 가진 사뭇 저돌적인 에너지는 분명 김향기에게 처음 보게 될 낯선 이미지였다. 강렬한 한편, 결과를 확신하기 힘든 베팅인 것도 사실이다. “전문가들이 제 점을 찾아주셨어요(웃음).” 파격적인 역할에 대한 도전의 부담과 재미에 대한 내 질문의 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김향기가 꺼내놓은 화두는 ‘점’이었다. “여기 제가 점이 있거든요.” 말을 하면서 오른쪽 입 아래를 콕 집어 가리키는데, 거기 정말 조그맣게, 지금까지 그녀를 만나면서 한 번도 인지하지 못한 작은 점이 고개를 내밀었다. “분장하시는 분들이 제 얼굴을 관찰하시더니, 이걸 더 과장되게 끌어주셨어요. 그 전까지 전 항상 점을 가리는 메이크업을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정보름의 캐릭터에 맞게 되레 더 강조한 거예요.”
김향기는 그 점이, 또 그 자신의 ‘점’이 사뭇 흥미로웠다고 한다. ‘“아직은 좀 어리기도 하고, 강렬한 컬러를 표현하는 게 자연스러울까?’ 부담이 컸는데, 이렇게 새로운 모습을 외부가 아닌 내 안에서 찾아 표현하게 되면서 그때부터 꽤 자신감을 얻었어요. 앞으로 저의 이런 부분을 좀 더 찾아내 활용해볼까 싶어요(웃음).” 그렇게 <한산: 용의 출현>은 관객에 앞서, 김향기 본인에게 또 하나의 발견을 준 도전이다. “돌이켜보면 드라마 <여왕의 교실>(2013)을 하면서 내가 이전에 연기하던 것과는 스스로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유도 모르게 불안하기도 하고,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하게 되고.” 즐거운 마음으로 놀러 가던 현장이 그때부터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때가 김향기 스스로가 ‘심정적으로는’ 자신을 책임질 ‘성인’ 배우의 길로 접어든 때가 아니었을까. “활동을 오래 하는 동안 저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으니, 이미지를 바꿀 강렬한 역할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한동안 했어요.” 김한민 감독과의 만남은 이런 생각을 좀 더 직접적으로 발전시켰다. “감독님이 그러셨어요. 대중이 사랑하고 봐오던 제 모습을 조금 달리하면, 새롭게 받아들일 여지가 더 커질 수 있을 거라고.”
그러고 보니 김향기가 이 일에 발을 들인 게 세 살 때다. 벌써 19년 전 잡지 모델로 카메라 앞에 섰고 여섯 살 때 이미 개와 어린이의 우정을 그리며 눈물샘을 터뜨린 <마음이>로 스타덤에 올랐다. 작품 한 편에 당당히 자신의 캐릭터와 영역을 확실히 가져간 경력 20년 차의 배우. 오랫동안 ‘아역’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두기엔 넘치는 재능과 경력으로 지금까지 김향기는 차근차근 자신의 영역을 확보해왔다. 그렇게 정보름이라는 캐릭터 역시 현재의 자리에서 김향기의 좌표를 확인하는 도전이고, 이제 그 반응을 지켜볼 일만 남았다.
홍보 일정으로 바쁜 가운데 요즘 김향기는 ‘홈트’에 빠졌다. “사실 그동안 연기를 잘하려면 정신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가만히 잘 쉬면 충전되고, 근육이 생길 줄 알았어요(웃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홈트도 하고 강아지와 산책도 하고, 최대한 하루를 균형 있게 보내려 노력한다. 오래 건강하게 연기를 하기 위해서란다. “생각해보니 제가 아직 스물세 살밖에 안 됐더라고요(웃음). 지금까지 정말 많이 했고,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가끔 불안하기도 해서 많은 걸 한꺼번에 바꿔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요즘은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걸 차근차근 하나씩 하자 해요. 전 아주 오래, 길게 연기할 거니까요.” (VK)
CREDIT
포토그래퍼 채대한 에디터 김나랑 패션 에디터 김다혜 글 이화정
스타일리스트 박초롱(변요한), 문진호(김성규), 김다현(김향기)
헤어 윤소현(변요한), 이재황(김성규), 정심(김향기)
메이크업 정안(변요한), 모아름(김성규), 서지윤(김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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